약 7년만에 미국을 다시 찾았습니다.

뉴욕으로 일주일간 출장을 갔다왔죠.(2월 5일 ~ 12일)

미국에서 총 8년을 살았고 뉴욕에서 보낸 시간만도

짧고 긴 방문기간을 합치면 3개월은 넘을텐데,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좀 낯설더군요.

이번 출장엔 어머니가 동행하셨습니다.

내가 뉴욕으로 출장간다고 말씀드리니까

70년대 중반 그러니까 약 30년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뉴욕을 방문하셨던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그런 말씀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문득

이번 출장에 모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어머니의 뉴욕 왕복항공권을 추가로 구매했죠.

어머니는, <그런 여행은 여자친구하고 가야지>

하시면서 안가시겠다고 버티셨지만,

출장을 가서 함께 지내면서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떠난게 참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흔이 넘으신 연세지만,

아직 14시간이 넘는 비행기여행을 하실 수 있다는 게 정말 다행입니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뉴욕 링컨센터 앞에서

 

World Trade Center가 있었던 자리

Westminster Kennel Club Dog Show 사진 보기

 

<경기불황에 안락사.유기..애완견 `수난시대'>
애견인구는 `폭증'.애견관리엔 `무관심'

(서울=연합뉴스) 이율 기자

경기불황이 이어지면서 애완견 수요가 급감, 애완 견 값이 많게는 절반 이상 추락해 애견 판매업자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게다가 한때 너도나도 키우기 시작하면서 `팔려간' 애완견들이 `비용 과다'를 이유로 안락사를 당하거나 유기되는 등 `수난시대'를 맞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파리 날리는' 애견센터 = 18일 40∼50개 애견매장이 밀집해 있는 충무로 일 대 애견센터들에 따르면 경기침체 이후 수요가 줄면서 애완견 값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50% 가량 떨어졌다.

충무로 `e편한애견' 관계자는 "슈나우저, 코커스파니엘, 미니핀 등 60만∼70만 원대에 거래되던 애완견이 현재는 30만원대로 전체적으로 30∼50% 가량 값이 떨어졌 다"며 "환불을 요구하거나 그냥 놓고 가는 손님도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월드컵애견' 관계자는 "1년 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애완견 값이 전체적으로 절반 가량 하락했다"며 "경기가 좋지 않아 구매자가 없는 것이 값 폭락의 원인"이라 고 밝혔다.

`애견종합병원' 윤진근 수의사는 "애완견 치료를 위해 찾는 손님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크게 줄었다"며 "근처 매장 중 장사가 되지 않아 문닫는 곳이 잇따르고 있다 "고 귀띔했다.

◆ 애완견 안락사.유기로 `수난' = 선물용이나 혹은 충동적으로 팔려간 애완견 의 경우 병이 들거나 관리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버려지거나 안락사되는 사례도 속출 하고 있다.

서울시의 용역을 받아 서울시내에서 버려진 개들을 수거해 보호하는 `한국동물 구조관리협회'에 따르면 구조된 애완견들은 지난해 1월 224마리, 2월 250마리에서 5 월에는 713마리, 6월 641마리, 7월 808마리로 대폭 늘어났다.

올들어서도 버려진 애완견은 한달 평균 600마리 이상으로 지난달까지 꾸준히 집 계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철민 사무국장은 "지난해 5월 이후 버려진 개의 숫자는 증가 추세로 이들 중 90%는 일부러 내다 버린 애완견"라며 "수요자들이 충동구매를 하다 막상 키워보면 신경 쓸 일이 많고, 관리비용도 만만치 않아 유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동물구조.관리 상담을 맡고 있는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성 북구에서 요크셔테리어를 키워오던 A씨는 애완견이 높은 곳에서 떨어져 목뼈가 옆으 로 돌아가자, `안락사 시켜달라'며 동물병원에 맡겨놓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이 단체 조희경 대표는 "애완견 안락사에는 1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들어가지만, 수술비는 30만∼40만원이나 돼 개가 많이 다쳤을 때 주인이 안락사를 선호하는 경우 가 흔하다"고 말했다.

또 지난 13일에는 서울 동작구 대방동 H아파트 인근에서 코와 귀에 털이 빠지는 피부병에 걸린 코커스파니엘이 벤치에 노끈으로 묶여 버려진 채 발견됐다.

피부병의 경우 2∼3달 치료하면 완쾌되지만,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워 버려진 것.

조 대표는 "애완견도 하나의 생명인데, 충동과 호기심에 따라 우후죽순식으로 구입했다 싫증이 나거나 부담이 되면 바로 유기해 버리는 책임감 없는 세태가 씁쓸 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애완견을 사들일 경우 수명이 다하는 15년 이상 책임지고 기를 수 있는지 를 점검한 뒤 함께 키울 가족 구성원의 동의를 얻은 다음 구입에 나서야 할 것이라 고 강조했다. (사진있음) yulsid@yna.co.kr

김충배(金忠培) 육군사관학교 교장(중장) ‘편지’가 인터넷상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명 사이트마다 ‘육사 교장의 편지’란 제목으로 띄워져 높은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기자 조갑제의 세계’(www.chogabje.com) 올려진 편지만 해도 6 현재 1600여명이 열람했다.

편지는 지난해 11월 22일 김 교장이 교내 강당에서 전 학년 생도 1000여명에게 강연한 내용으로, 김 교장이 교수진으로부터 전달받은 외부인사의 글을 강연용으로 보충한 것이라고 육사는 6일 밝혔다.

편지는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인 여러분들은 50·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아는가?”라고 시작한다. 이어 1960년대 초반 서독에 파견될 광부와 간호사의 봉급을 담보로 1억4000만 마르크의 차관을 받게 된 경위 서독에서 시체를 닦은 간호사와 하루 10시간 넘게 지하 1000미터에서 일한 광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육영수(陸英修) 여사가 서독에서 이들을 만나 가난이 서러워 통곡한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또 편지는 여인네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가발과 전국 쥐잡기 운동으로 모은 쥐털로 만든 ‘코리안 밍크’의 수출 월남 참전 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건설한 경부고속도로 이야기 등을 실은 뒤 “간호사와 광부, 참전용사와 중동 근로자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편지는 이어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할 자격이 있는가”고 반문한 뒤 “국민소득 4만달러의 고지 달성 때까지 우리들 신·구세대는 뭉쳐야 한다”고 끝을 맺는다.

김 교장이 강연할 당시 생도들의 분위기는 숙연했으며 눈물을 흘리는 생도도 있었다고 육사는 전했다. 육사는 강연 내용이 인터넷상에 올려진 것과 관련, “강연 내용이 좋아 학교 간부들이 띄운 것 같다”며 “육사에서는 메일 등을 이용해 교수와 생도들이 자주 대화를 갖는다”고 말했다.

(구성재기자 sjkoo@chosun.com )

 

편지 원문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 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 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 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 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 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었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 해?” 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 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 우리들 신,구세대는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