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어제와 오늘, 학소도 텃밭과 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주말 양일 동안 회사일을 잊고 사적인 약속도 만들지 않고

밭일과 독서를 반복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간 해외출장 중에 구입하거나, 주위에서 선물을 받았거나, 아니면

인터넷으로 주문 등으로 수집한 여러 식물의 씨앗 중에

금년에 심을 것들을 골라 환단과 화분에 정성스럽게 심었다.

우선, 앞뜰 화단에 아일랜드의 국화인 트리폴리움(Trifolium repens)을

심었고, 접시꽃 씨앗과 붓꽃, 익모초 씨앗을 화분에 파종했다.

허브 종류로는 야로우(Yarrow) 외 말로우(Mallow), 딜(Dill),

<허브가든의 왕>이라 불리는 안젤리카(Angelica) 등을 심었다.

작년에 이어 내한성 다년초본인 레몬밤과 애플민트는 벌써부터

뜰 이곳저곳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며칠전 구파발에서 사온 채소 모종도 심었는데, 종류는

고추, 상추, 방울토마토, 참외, 수박, 가지 등이다.

물론 호박, 조롱박 씨앗도 학소도 군데군데 심고

그 위에 우리 멍멍이들의 배설물을 듬뿍 주웠다.

음....또....아, 2주 전에 파종한 옥수수의 싹이 나오기 시작했고,

오늘 완두콩도 밭에 심었다.

하지만 아직 봄농사가 끝난 건 아니다. 고구마도 심어야하고....

 

밭일을 하다가 지치면 거실에서 오랜만에 읽는 소설책에 몰입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작가 중 한 명인 르 클레지오의 장편 <우연>.

인터넷서점에서 언제 주문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지금이라도 읽게되어 다행이다.

이 소설은 얼마전에 본 잭 니콜슨/다이앤 키튼 주연의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Something's Gotta Give>을

왠지 연상시켰다. 스토리와 배경이 전혀 다른데도 말이다.

 

아무튼, 지금 밖에는 기다리던 봄비가 내린다.

조금전 집안에 있는 모든 화분을 밖에 내놓았다.

이들 화초들과 학소도 터에서 자라고 있는 나머지 식물식구들이

오랜만에 쉬원한 샤워를 하고 있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니

내 기분이 참 좋다.

 [주말농장]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자연'을 선물하자
무당벌레 개구리 지렁이 친구삼아
아이들과 함께 씨뿌리고 싹틔우고…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아파트에 사는 조희정(37)씨는 지난 30일 남편 김수훈(43)씨, 초등학교 1년생 딸 유빈이와 함께 서오능 맞은편에 자리한 동신농원에 다녀왔다. 차로 15~20분 걸리는 그 농원이 조씨 가족의 주말농원이다. 초등학교 6학년생인 아들 용빈이는 친구들과 노느라고 참가하지 않았다. 조씨 가족은 흙을 부수고 뒤집어주는 작업을 4시간 정도 했다. 지난해 심었던 호박 넝쿨 말라비틀어진 것도 치우고, 농장 근처에서 냉이도 캤다. 집에 돌아오니까 어깨 다리 허리 모두 안 아픈 곳이 없지만 기분 좋은 피곤함에 밤에는 단잠을 잤다.

▲ 주말농장은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숨쉬며 생명에 대해 공부하는 공간이다. 지난해 가을 경기도 이천의 한 주말농장에서 아이들이 옥수수를 따 들고오고 있다.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제공

최근에 주말농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식물을 키우는 재미도 각별하고 아이들에게는 자연 공부도 된다고 주말농장을 일구는 이들은 입을 모은다. 게다가 도·농 간 교류 활성화와 농가 소득 증대에도 도움이 된다.

조씨는 지난 2003년 처음 주말농원을 시작했다. 작년에는 상추 등 쌈밥에 필요한 채소들을 심고 부추 고추 깻잎도 심었다. 아이들은 봉숭아꽃 딸기 땅콩 등을 심자고 고집해 그것도 심었다. 내가 임대한 땅이니까 내 맘대로 욕심껏 여러 종류의 작물을 심었다.

▲ 지난 27일 개장한 경상남도 창원의‘흙이랑 이웃이랑’농원에서 회원들이 밭을 갈고 묘목을 심고 있다. 창원=김용우기자 ywkim@chosun.com

농사 경험은 없었지만 10평을 가꾸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농협(www.nonghyup.com) 홈페이지나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agro.seoul.go.kr)에 작물 재배하는 법, 텃밭 가꾸기 등이 잘 나와 있어서 도움이 됐다. ‘주말농원 이웃’들과 야외에서 식사도 함께 하면서 어울리다 보면 “지금 모종을 할 때다” “이젠 옮겨심기를 해주라”는 등 어르신들의 가르침도 많이 듣는다.

조씨는 7, 8년 전쯤 경기도 덕소에 살 때, 놀이터에 간 아들이 놀이 기구 타기보다는 모래밭에서 장난하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아파트 근처 공터에 밭을 일구고 상추 고추 참외 호박 콩 등을 심었었다. 그때 흙을 삽으로 뒤집어줘서 속흙들이 말라야 잡풀들이 없고 농약을 안 쳐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놀이공원에 가는 것보다 주말농장을 좋아했다. 흙 위에서 뛰어놀 때면 무얼 깨트릴 염려도 없고 위험한 것도 없었다. 집에서처럼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소리 지르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그보다는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면서 함께 의논을 하게 되었다.

땅을 일구고 씨를 심어서 싹을 틔우고 그 식물들이 자라 열매를 맺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운 교육이었다. 흙 속에는 지렁이 개미 등 무수한 곤충이 있었고, 들에는 무당벌레 개구리 등 친구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풍뎅이 노린재 등 곤충의 이름이나 개미의 종류를 줄줄이 뀄다.

주말농장은 소풍 코스도 된다. 일산 마두역 부근 아파트에 사는 허영석씨는 인근 자유농원에 20평 밭을 가꾸면서 상추 치커리 등 쌈밥에 들어가는 야채들을 주로 가꾸면서 주말에 잔디밭에서 논다. 4월 말부터는 수확이 가능한데, 한여름 밤에는 원두막에서 바비큐를 구워 이들 야채에 싸서 먹기도 한다.

주말농장에서 농작물을 수확하면 마음도 넉넉해져 이웃과의 사이도 좋아진다. 조희정씨는 “작년에 봉숭아 씨를 받아 이웃에 나눠주었고, 가을에는 배추를 60~70포기 심어 장마 때문에 25포기 정도밖에 수확하지 못했지만 역시 이웃과 나눴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 대방동 대방아파트에 살면서 68세 동갑의 부인과 함께 주말농장 6평을 10년 이상 가꾸고 있는 유광렬씨도 “주말농장의 재미는 상추 고추 들깨 호박 부추 등 농작물의 씨를 뿌리고 가꾸는 재미, 그리고 이웃과 나누는 재미”라고 말했다.

(김왕근기자 wkkim@chosun.com )

 

[주말농장] 어떤 농장 무슨 작물 고를까
집에서 30분 거리에 3~5평이 딱 좋아
4월엔 상추·열무·쑥갓
5~6월엔 고구마와 콩
8~9월엔 무·배추 제격


주말농장은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요것쯤이야” 하고 달려들었다가 한 달도 채 안 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에게 맞는 주말농장을 선택해야 하고 욕심을 크게 내지 말아야 한다. 아래 표는 전국의 주말농장 표이다. 농협(www.nonghyup.com) 인터넷 주말농장 코너에 들어가면 더 많은 정보가 있다. 농협 중앙회 농촌복지홍보부 농촌지원팀(02-397-5622)으로 연락하면 본인에게 맞는 다른 주말농장을 추천해줄 수도 있다. 서울의 경우 서울시 농업기술센터(02-3462-5706, agro.seoul.go.kr)에서도 주말농장을 추천해 준다.

■주말농장 선택

주말농장은 우선 집과의 거리가 너무 멀지 않아야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자주 들러 작물을 보살필 수 있다. 집에서 30분 내외의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주말농장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가족들과의 나들이를 생각하는 도시민이라도 1시간이 넘으면 곤란하다.

▲ 고구마·콩·배추·무·봉숭아…. 주말농장에는 어떤 작물도 재배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 2003년 농촌체험 관광사진 공모전에서 동상을 수상한 고양시 일산구의 강석현씨 가족. 부인 이지선씨가 찍었다. 농업협동조합 중앙회 제공

다음으로는 화장실, 세면장, 주차장,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그늘막 등 편의 시설이 고루 갖춰져 있는 곳을 고른다. 작년의 경우 비가 자주 와서 물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가뭄을 대비해 스프링클러 시설이 설치돼 있다면 더욱 좋다. 또 농기구를 대여하는지, 종자와 모종 등을 농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지 여부도 사전에 점검하는 것이 좋다.

주말농장을 처음 시작하는 도시민들이라면 욕심은 금물이다. 3~5평 정도가 적당하다. 이 넓이만 가꾸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 최근에는 주말농장뿐 아니라 주말과수원도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사과를 수확하고 있는 모습. 농업협동조합 제공

■작물재배요령

보통 개장 러시를 이루는 4월에는 상추, 열무, 쑥갓, 깨, 시금치, 얼갈이배추 등 씨앗을 뿌리고 고추, 상추, 배추, 가지, 방울토마토 등의 모종을 심을 수 있다. 5~6월에는 고구마와 콩, 8~9월에는 무, 배추, 당근 등 다양한 채소를 심어 가꿀 수 있다. 주말농장에서는 농장주가 작물재배요령에 대해 농사경험을 바탕으로 알려 주기 때문에 별도의 농사 지식이 없어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음은 도시민들이 즐겨 심는 작물의 재배법이다.

●상추

주말농장에서 바비큐를 구워먹으면서 밭에서 상추를 뜯어 먹는 맛은 일품이다.

상추의 생육기간은 60일 정도이며 파종은 보통 5월까지, 모종을 내어 옮겨심기를 하면 더 잘 자란다. 보통 딸 때는 밑의 잎부터 따서 먹으며 윗잎이 적어도 6~7장은 되게 놔둔다.

●쑥갓

쑥갓은 유럽에서는 화초로 여길 정도로 꽃의 색깔과 자태가 곱다. 일본에서는 쑥갓을 고려국(高麗菊)이라 별칭하여 우리나라에서 전래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위와 장에 좋고 알칼리성 식품이라 미용에도 좋은 쑥갓은 봄, 가을로 심는데 3~4월과 9~10월이 적기다. 뿌릴 때에는 20cm 간격으로 줄뿌림하며 자라면서 2회 정도 솎아 준다. 제대로 자리를 잡아 자랄 때 순지르기 하듯이 밑에서 끊어 따면 계속 수확할 수 있다.

●배추

배추는 보통 초기 생육이 왕성해야 속이 둥글게 꽉 차므로 밑거름을 충분히 주도록 한다. 봄배추의 경우 직접 파종할 수 있으며 김장배추의 경우 모종을 키워 옮겨 심는 것이 좋다. 봄배추는 파종 뒤 한 달 이후 수확이 가능하며 김장배추는 보통 60~80일 사이에 수확할 수 있다.

●고추

비타민 C가 사과의 18배에 이르는 고추는 보통 두 번의 옮겨심기를 해야 하나 요즈음은 종묘상에서 구입하여 모종을 심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보통 서리가 지난 4월에 정식하며, 비나 바람에 잘 쓰러지므로 필히 지주를 세워 준다. 또한 건조가 심하면 꽃이나 열매가 잘 떨어지므로 건조가 계속되면 물을 주어야 한다.

고추는 밭에서 직접 따 먹는 것이 맛있기 때문에 특히 농약은 피한다. 진딧물이 들끓을 때는 우유를 진하게 물에 타서 뿌려 주면 우유가 말라 진딧물을 질식시켜 죽인다.

(심재건·농협중앙회 농촌복지 홍보부 차장대우)

 

우리고장 '주말농장' 어디에 있을까 - 옆에 클릭!

[국토박물관 순례] 16. 남양주 여유당(與猶堂)

흐드러진 진달래는 茶山의 향기 품고…

▶ 다산 정약용이 태어나고 세상을 떠난 여유당(與猶堂). 지금은 신혼부부의 야외 촬영장으로 인기가 있는 팔당 호숫가의 외딴 집으로 남아 있지만 다산 당년에는 그윽한 강마을의 저택이었다. [조용철 기자]

▶ 다산이 밧줄과 도르래를 이용해 만든 물건을 들어올리는 데 사용한 거중기.

요즘은 기상이변이 심하여 날씨를 종잡을 수 없다. 그 사정은 자연의 식물도 마찬가지인 듯 봄꽃들이 제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고 한꺼번에 피고 한순간에 시든다.

본래 봄의 화신은 산수유와 매화에서 시작돼 개나리.진달래.살구꽃.앵두꽃.벚꽃.복사꽃으로 이어지는 것이 꽃의 서열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봄은 진달래와 함께 익어간다. 진달래는 키가 작은 떨기나무로 화강암 골산에서도 잘 자라고 참나무.소나무 같은 큰키 나무 틈새에서도 가는 햇살을 받으며 곱게 피어난다.

예부터 한민족은 진달래를 사랑해왔다. 옛 사람의 시에 진달래의 별칭인 두견화(杜鵑花)가 많이 나오는 것, 혜원의 풍속화 중에는 머리에 진달래꽃 한 송이를 꽂은 여인이 나오는 것, 서민들의 봄나들이엔 찹쌀가루에 진달래꽃잎을 붙여 기름에 튀기는 화전(花煎)이 뒤따르는 것, 이 모두가 우리네 봄의 서정이 진달래와 함께 했음을 말해준다.

서울 근교에도 진달래의 명소는 너무 많다. 북한산 진달래능선도 장하고 광주 검단산, 이천 도드람산의 진달래는 떼판으로 피어난다. 그런 중 내가 가장 즐기는 진달래는 경기도 광주, 남양주, 양평 일대의 야산에 핀 진달래를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일없이 달리는 것이다.

팔당호수를 끼고 한강변을 달리는 이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는 곳곳의 너저분한 가든과 모텔이 사람의 심사를 어지럽게 하지만 그래도 야산의 진달래만은 변함없이 봄날의 정취를 전한다. 특히 도마리.관음리.금사리.분원리 등 옛날 도요지가 있던 도공 마을의 뒷산은 유난히 진달래가 붉게 피어 더욱 장관인데 혹시 가마 땔나무로 벌목을 심하게 한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달래를 찾아가는 나의 팔당 호숫가 드라이브는 거의 반드시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馬峴)마을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사시던 여유당(與猶堂)에서 마무리한다. 여유당은 지금은 팔당 호숫가의 외딴 집으로 남아 있지만 다산 당년에는 그윽한 강마을의 저택이었다. 대한의 풍수가들이 국내 최고의 양택 중 하나로 지목하는 이곳을 그 옛날에는 소내(苕川) 또는 두릉(杜陵)이라 했고, 다산의 5대 조부터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

다산은 여기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세상을 떠났고, 이 집 뒷산에 묻혔다. 다산은 22세 때 성균관에 입학한 때부터 임금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다산이 환갑을 맞았을 때 스스로 일대기를 기록한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서 말하기를 자신은 정조의 총애를 지나치리 만큼 받아 상품으로 내려주신 책은 이루 적을 수 없고 호랑이가죽과 말도 받았다고 했다.

다산은 정조를 보필하면서 한강을 건너는 선주교(船舟橋)도 설계했고, 화성(華城) 축조에 쓸 거중기도 제작했다. 그러나 항시 노론 측으로부터의 견제와 시기로 정치적 위기를 맞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1800년, 다산 나이 39세 때 정조대왕이 갑자기 서거하자 다산은 자신의 정치생명도 끝났음을 직감하고 이곳 고향집으로 내려와 "겨울 시내를 건너듯 신중하게 하고, 사방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는 '노자'의 말을 이끌어 '여유당'이라는 당호를 짓고 칩거했다. 그렇게 조심했던 다산이었건만 그는 결국 유배객이 돼 강진에서 18년간 귀양살이를 보내고 나이 57세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75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줄곧 여유당에 머물며 자신의 학문을 완성시켰다.

다산 선생은 생전에 50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 내용은 경학.실학.역사.지리.문학.과학.음악.미술.기독교 등 안 걸치는 곳이 없는 대학자이고 사상가이고 시인이었다. 다산이 이룩한 업적은 '목민심서'로 대표되는 실학의 완성이라고 칭송되고 있다. 그러나 다산 자신은 '자찬묘지명'에서 "나의 학문은 한마디로 육경사서(六經四書)로 자신을 닦고 일표이서(一表二書)로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본말을 갖춘 것"이라고 했으니 그는 경학과 실학을 모두 아울렀다고 할 것이다.

다산의 시를 말할 때는 사회 현실을 직시한 '애절양(哀折陽)' 같은 현실시에 주목하여 역시 그의 실학자적인 면모를 강조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의 시를 보면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서정시가 많아 혹시 우리가 배워 알고 있는 다산의 또 다른 인간적 면모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실 나는 다산 선생의 인간상은 맑고 곧고 모범생 같은 단아한 선비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다산의 일생을 보면 그는 대단히 낭만적이고 자유분방한 기질까지 갖고 있었다.

다산 나이 36세 때인 1797년의 일이다. 어느 여름날 석류꽃이 막 피고 내리던 보슬비가 개자 고향 소내에서 물고기 잡기 좋을 때라는 생각이 들자 조정의 허가도 받지 않고 고향집으로 달려갔다. 다산은 고향 친척사람들과 강에 나가 그물을 쳐 한배 가득 잡고서는 산나물과 함께 고기를 끓여 실컷 먹었다. 그리고 나서 다산은 천진암(天眞庵)으로 가 사흘을 머물면서 향기로운 꽃과 새소리를 들으며 20여 수의 시를 짓고 돌아왔다.(遊天眞庵記)

그런가 하면 다산은 꽃을 좋아하는 여린 서정도 있었다. 다산이 젊어서 서울 명례방(남대문시장 부근)에 살 때는 자기 집에서 '죽란시사(竹欄詩社)'라는 시모임을 결성한 적이 있었다. 이들의 모임은 살구꽃 필 때 한차례 모이고, 복숭아꽃 필 때 한차례 모이고, 참외가 익을 때 한차례 모이고, 연꽃 필 때 한차례 모이고, 가을에 국화가 필 때 한차례 모이고, 겨울에 큰 눈이 내리면 한차례 모이고, 섣달에 분매(盆梅)의 꽃이 피면 한차례 모였다.

다산의 이런 모습을 간혹 학생들에게 얘기해주면 모두 의아해 하면서 어떻게 그런 분이 그처럼 강렬한 현실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 되묻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치열하게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이 꼭 서정과 낭만을 발하며 살아가는 것과 배치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답한다. 마치 고은 신경림.김지하의 서정시가 현실시와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다산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으나 그 자신은 그런 세상을 온몸으로 껴안으며 살았다. 마치 그가 자연을 사랑하고 꽃을 사랑하던 그 자세, 그 마음으로.

다산이 받은 형벌은 끝까지 사면되지 않았다. 그러다 1910년 조선왕조가 멸망하는 바로 그 해 7월에 극적으로 복권되고 문도공(文度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다산을 위한, 세상을 위한 왕조의 마지막 조치였다. 그리하여 여유당 뒷산 자락에 있는 다산의 묘소 앞에는 "문도공 다산 정약용"으로 시작하는 묘비가 우뚝 서 있다.

다산 묘소에 오르면 여유당 ㅁ자집을 발 아래 두고 팔당호수가 아련히 펼쳐진다. 다산 선생이 살던 여유당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떠내려갔고 팔당댐이 생기면서 옛 마을은 모습을 잃게 되었다. 그러다 1975년에 복원한 것이 지금의 여유당이다. 그러나 풍광 수려한 이곳은 이미 유원지로 바뀐 지 오래되어 그 난잡하고 어지러움을 보면 여기가 과연 한국 지성사의 성지(聖地)인가 하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다운 것은 두릉골 야산에 피어 있는 연분홍 진달래꽃뿐이다.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예술대학원장>

키우던 개 시켜 선거운동 방해
울산지방경찰청 수사과는 오늘 키우던 개를 시켜 총선 후보자의 선거운동을 방해한 혐의로 울산시 울주군에 사는 40살 김모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오늘 오전 9시쯤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일대에서 선거 운동을 하던 모 정당 후보를 자신이 키우던 개를 시켜 물도록 하고 자신도 선거 운동원들과 몸싸움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황보연[hwangby@ytn.co.kr][저작권자(c) YTN & Digital YTN

정치개판을 진짜 개판으로 만들려구?

"케네디는 빨리 잠들었다" 재키 성고백서 출간

재키는 케네디에게 만족하지 못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명성이 높았으나 부인인 재키는 그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재키는 "그는 너무 빨리 잠들었다"고 성적인 불만족을 털어놓았다고 새로 나온 책 <그레이스 앤 파워>의 저자 샐리 베델 스미스는 쓰고 있다.

케네디의 끊임없는 바람기 중 재키가 가장 괴로워했던 것은 마릴린 먼로, 사교계 여왕인 메어리 마니어와의 염문이었다. 반면 재키는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를 "섹슈얼하다"고 표현했고 유엔대사였던 아들라이 스티븐슨과도 친한 사이였다.

케네디는 재키의 남자친구들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키가 여동생과 함께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의 요트를 타고 항해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는 "무릎을 꿇고 재키에게 가지 말라고 애원했다"는 것이 가족 친구인 미사 바틀렛의 말이다. 케네디의 사후 재키는 오나시스와 재혼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재키는 '케네디는 내가 없으면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케네디와의 결혼은 무의미한 것이었고 매번 그것을 확인하는 것의 연속이었다'고 참담해했다.


한상미 mimi@hot.co.kr기자 ⓒ[굿데이 04/12 10:24]

居卑而後知登高之爲危.處晦而後知向明之太露.


거비이후지등고지위위.처회이후지향명지태로.


守靜而後知好動之過勞
養默而後知 多言之爲躁.


수정이후지호동지과로
양묵이후지 다언지위조.
 


낮은 곳에 살아본 후에야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 위험한 줄 알게 되고,
어두운 곳에 있어 봐야 밝은 것의 고마움을 안다. 
 

고요하게 살아본 뒤에야 번거러움이 수고롭다는 걸 알게 되며, 

조용하게 지내본 후에야  

말 많음이 시끄러운 것임을 알게 된다.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