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치장할 필요가 없이,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살아간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매일 반복되는 삶에서,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차갑고 건조하며 생명 없는 물질들하고만 관계를 맺는다. 생명체와 교감하는 법을 잊어버린 많은 사람들이 이제 삶이 터전이 되는 자연을 파괴적인 태도로 대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뭇 생명들과 잃어버린 교감을 회복하는 일이 우리에게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라는 사실을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인류가 지구 위의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사느냐 죽느냐가 그 성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명체와 교감하는 감성을 회복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아름다운 것은 피로한 사람의 마음에도 쉽게 다가간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면 어려운 설교 없이도 자연과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감각이 저절로 깨어나기 시작한다.

<야생 거위와 보낸 일년 Das Jahr der Graugans> (Konrad Lorenz 지음/유영미 옮김/최재천 감수) 중에서

원수도 감동한 忠犬 일편단심

한 애견의 주인을 향한 충심이 국경을 뛰어넘었다.

‘바스마치’라는 카프카스산 셰퍼드(사진)는 그루지야의 아자리야 자치공화국 지도자였던 아슬란 아바쉬제의 애견 중 하나다. 현재 바스마치의 주인은 그루지야 중앙정부로부터 독립노선을 고집, 그루지야를 무력충돌위기까지 몰아넣었다가 지난 8일 러시아로 망명한 상태다.

주인을 잃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아바쉬제의 애견 80마리는 모두 경매에 처해질 운명이었다. 그러나 바스마치가 주인과의 생이별 후 식음을 전폐하며 날로 수척해지자 그루지야 정부는 이 개에 한해 주인에게 보내주기로 특별결정을 내렸다.

바스마치의 일편단심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 개는 그루지야에서 일약 스타가 됐다. 지난 13일에는 러시아 국영TV가 바스마치의 모스크바 도착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바스마치의 모스크바 행에는 별도 전세기까지 동원됐다.

바스마치를 제외한 나머지 79마리는 예정대로 팔려나갈 예정이다. 이 개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자리야 수도 바투미 교외의 널찍한 개집에서 호사스럽게 생활했다. 교사와 의사의 월급이 50달러(6만5천원)도 안되는 아자리야에서 아바쉬제는 자신의 애견 관리에만 매달 2만달러(약 2천4백만원) 이상의 돈을 쏟아부었다. 미헤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이 비용을 대신 빈곤지역의 고아와 학교를 위해 쓰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인숙기자 sook97@kyunghyang.com>
ⓒ[경향신문 05/17 19:07]

[여적]애완견

사람이 개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은 1만~2만년전부터라고 한다. BC 9,500년쯤 구석기 시대 유적인 페르시아 베르트 동굴과 BC 9,000쯤 독일 서부 셍겔베르크 유적에서 사람의 유골과 개의 유골이 함께 발견된 것은 이같은 추정을 뒷받침한다. 학계 일각에서는 개의 최초 가축화를 적어도 제4빙하기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거나 개는 인간과 오랜 인연을 맺어왔으며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임에 틀림 없을 것 같다.

개는 인간에게 충실하고 의리가 있는 가축으로 전세계적으로 충견설화가 많다. 노아가 대홍수 때 방주에 물이 새자 개의 코로 그 틈을 막았으며 그 후부터 개의 코가 차가워졌다는 전설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북 선산군 도개면의 의구총(義狗塚), 충남 부여군 홍산면의 의구탑 등 화재로부터, 또는 혹한으로부터 주인을 구하고 죽은 개의 전설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경주 최씨 집안처럼 조상이 개로 다시 태어나 가문을 지켜줬다는 환생설화도 적지 않다. 우리 선조들은 개를 인간과 상통하는 영감적인 동물로까지 보았던 것이다.

‘펫 로스(pet loss)’는 애완 동물을 잃은 주인의 슬픔을 표현한 말로 미국과 영국에서는 펫 로스 전문 병원까지 생겼다고 한다. 애지중지해온 동물이 죽은 뒤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치유하기 위한 클리닉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애완동물은 가족 이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듯싶다. 하기사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인간과 동물의 분별력을 잃고 ‘플러시’라는 애완견의 전기까지 쓸 정도였으니….

애완견 혈통관리를 위한 축산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개를 가축으로 새로 지정한다”고 오해한 애견가들이 사이버 시위를 벌여 화제다. 농림부 홈페이지에 하루 수천건의 항의 글이 쇄도하는 데 “가족의 일원인 애견을 가축으로 분류하다니 말도 안된다”는 내용이 주종이라고 한다. 가족해체가 일반화된 황량한 세태 속에서 이들 애견가의 개 사랑이 목청을 돋우는 요즘, 가족에 대한 새로운 개념정의가 필요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성보 논설위원 sbkang@kyunghyang.com〉
ⓒ[경향신문 09/29 23:19]

사람 9명 구한 충견 2마리 명예 소방견 위촉

일간스포츠] 심야에 식당가에서 불이 나자 마구 짖어대 주인 등 9명의 주민을 구한 충견 2마리가 명예 소방견으로 위촉됐다.

지난 12일 오전 3시 10분께 전남 목포시 상동 K음식점에서 전기누전으로 추정되는 불이나 인근 2개 식당으로 번져 모두 3개 음식점을 태우고 진화됐다. 불이 났을 때 이 음식점들에서 잠을 자고 있던 주민 9명은 개들이 다급하게 짖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뒤 화재현장에서 빠져 나와 화를 면했다.

화마로부터 인명을 구한 개들은 K음식점 사장 김 씨가 키우던 1년생 푸들 '짱이'와 M음식점에서 키우는 10개월생 진도견 '리오' 등 2마리. 특히 이날 식당 안에 있던 '짱이'는 식당 천장까지 불길이 번진 상황에서 주인을 깨우기 위해 격렬하게 짖어대 잠결에 이 소리를 듣고 나온 K식당 부부 등 5명을 화마에서 구해냈다. 옆 집 M식당 가족 4명 역시 애견 '리오'가 짖어대는 소리를 듣고 집 밖으로 대피, 생명을 건졌다. 주민들로부터 충견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전남 목포소방서는 18일 이들 개 2마리를 명예 소방견으로 위촉하고 명예소방견 목걸이와 위촉패가 부착된 새로운 개 집을 선물했다.

- Copyrights ⓒ 일간스포츠

주인찾아 1년9개월 돌아온 충견

 

충견으로 소문난 영국산 순종 콜리가 혈통을 잇기 위해 전남 영광으로 교배하러 갔다 실종된 지 1년9개월 만에 80여㎞ 떨어진 담양의 옛 주인집으로 되돌아와 화제다.

주인공은 올해 5살짜리인 암컷 콜리종 ‘보리’(사진).

전남 담양군 창평면 용수리 장승태(47ㆍ순천대 교수)씨가 키우던 보리는 2001년 11월 교배를 위해 장씨의 친구 김모(47)씨의 손에 이끌려 영광의 한 애견가에게 보내졌다.

보리는 영광에 도착한 첫날 밤 수컷과 합방을 했지만 장씨 가족들을 잊지못하며 밤늦게까지 울어댔다.

참다 못한 애견가는 보리를 우리에서 풀어놓아 진정을 시켰고, 보리는 애견가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집을 뛰쳐나왔다.

갑작스런 보리의 가출 소식을 접한 장씨 가족들은 다음날 영광에 내려가보리를 찾아 나서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허사였다.

결국 보리와의 재회를 1년 넘게 기다리다 포기하고 올해 6월 순천으로 이사를 갔던 장씨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든 것은 지난 5일.

보리를 팔았던창평의 애완견 센터 주인에게서 “보리가 둘째 아들이 다니던 창평초등학교 앞에 비를 맞고 힘없이 앉아 있어 집으로 데려왔다”는 전화연락을 받은 것.장씨는 단숨에 창평으로 달려갔고 21개월동안 전국을 헤맨 끝에 되돌아온보리를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보리는 발견 당시 교통사고를 당한 듯오른쪽 앞발 관절이 비틀어지는 만신창이 상태였지만 주인을 되찾은 기쁨에 꼬리를 연신 흔들어댔다.

장씨는 “둘째 아들 의 학교까지 따라다녔던 보리가 옛 집을 찾아왔으나집 주인이 바뀐 것을 알고 학교로 가서 주인을 기다렸던 것”이라며 “보리에게 신랑을 찾아주고 정성을 다해 키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93년 진도에서는 진돗개 ‘백구’가 대전으로 팔려간 지 7개월 만에 주인품으로 돌아와 화제가 됐었다.

*** 14년간 주인 무덤 지킨 개 이야기

에든버러의 바비(와즈시카 사다나카 글, 소부에 히로시 그림, 이영미 옮김,대현문화사, 64쪽, 9000원)=자신을 돌봐주던 주인이 숨지자 14년 동안 그의 무덤을 지킨 개 ‘바비’의 이야기. 130여년 전 스코틀랜드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현지 조사까지 해가며 동화로 만들었다. 에든버러 시내에 동상이 세워져 있는 바비가 주변의 사람들과 나눈 사랑이 따뜻한 분위기의 그림으로 전달된다.

이팝나무

2년 전 봄, 친구 채정병이 선물준 묘목이 앞뜰에 심어져있다.

당시 친구도 묘목을 구입하면서 들었던 이름을 잘 기억 못해

나는 최근까지 나무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꽃이 피었으면 인터넷이나 식물도감에서 찾아봤을텐데,

나무가 아직 어려 꽃을 본적이 없다.

그러던 며칠 전, 점심시간에 회사근처 경복궁에 산책갔다가

그 묘목의 수피와 잎이 똑같은 나무를 발견하게 되었다.

안내 표지판에 <이팝나무>라고 적혀있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이제 그 어린 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그 나무가 학소도 앞뜰 한켠에서 무럭무럭 성장해

매년 5월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을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천연기념물 제150호 남해 물건리의 '방조어부림'에 활짝 피어난 이팝나무 꽃. 멀리서 처음 봤을 때, 도저히 이팝나무 꽃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활짝 피어있었습니다. 2002. 5. 9.

출저:  http://www.infomail.co.kr/cgi-bin/history?author_idx=20742

    

  

 

이팝나무는 남부 지방에서 자라는 낙엽성 교목.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이 나무의 고향은 전라도, 경상도와 같은 따뜻한 남쪽이고 해안을 따라서는 서쪽으로는 인천까지, 동쪽으로는 포항까지 올라온다. 그러나 옮겨심으면 중부 내륙에서도 잘 자란다고 한다. 이웃하는 일본, 대만과 중국의 운남산에서 자라지만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이팝나무의 학명은 치오난투스 레투사(Chionanthus retusa)인데, 여기서 속명 치오난투스는 '흰 눈' 이라는 뜻의 '치온(Chion)'과 '꽃'이라는 뜻의 '안토스(Anthos)'의 합성어로, 하얀 눈꽃이라는 의미가 된다. 영어로는 '프린지 트리(Fringe tree)'이다. 이팝나무를 두고 한자로는 육도목(六道木), 유소수(流蘇樹)라하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잎을 차 대용으로 써 다엽수(茶葉樹)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늦은 봄 이팝나무 꽃송이가 온 나무를 덮을 정도로 피었을 때 멀리서 바라보면 꽃송이가 사발에 소복이 얹힌 흰 쌀밥처럼 보여 이밥나무라고 했으며, 이밥이 이팝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팝나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다른 의견도 있다. 이 꽃이 여름이 들어서는 입하(入夏)에 피기 때문에 입하목(入夏木)이라 불렀고 입하가 연음되어 이파, 이팝으로 되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전라북도 일부 지방에서는 입하목이라고도 하며 그 밖에 이암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이팝나무는 한 해의 풍년을 점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흰 꽃이 많이 피는 해는 풍년이, 꽃이 많이 피지 않은 해는 흉년이 든다고 믿어 왔다.

한편 서울시는 복원될 청계천변에 이팝나무 1527그루를 심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부 이남에서 주로 자라는 자생수종인 이팝나무는 그 동안 서울 시내 공원수나 관상용 정원수 등으로 심었으나 가로수로 선보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꽃구름 피워낸 흰 쌀밥같은 꽃잎

수령 2백년된 이팝나무 24주가 40여그루의 상수리나무와 섞여 자생군락지를 이루는 이곳은 도심속에서 꽃구름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다.
전주에서의 만개 시기는 보통 5월18∼20일이지만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벚꽃처럼 개화시기가 훨씬 앞당겨졌다.
전주시는 지난 99년 천주교 순교지인 동완산동 초록바위 이팝나무 군락지 주변에 펜스와 안내판을 설치하고 천연기념물 지정을 추진했지만 아쉽게도 무산됐다.
현재 이곳 이팝나무는 시보호수로도 지정받지 못해 행정당국의 지속적인 관리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전북도 문화재위원인 길봉섭교수(원광대)는 “전주의 이팝나무가 특별한 가치를 갖는 것은 자생 군락지로 고증됐기 때문”이라며 “노송동에 소나무가 많았다고 기록된 일본 학자의 논문에 동완산동과 기전여고 주변 이팝나무 군락지도 언급돼 있다”고 밝혔다.
길교수는 동완산동 이팝나무 군락지가 오랫동안 훼손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원인으로 두가지를 들었다.

우선 자그마한 구릉지대인데도 불구, 지형이 매우 가파르다는 점이다. 학술조사를 위해 이곳을 오르던중 주머니속 수첩이 빠져나갔을 정도라는 것.
또 이 주변이 예전 형집행장소여서 주민들이 접근을 꺼렸다는 것도 그 이유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안 마령면의 이팝나무 소재지가 옛날에 아기 무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돼 사람들이 피해다녔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천연기념물로서의 가치를 강조해 온 길교수는 “전주의 이팝나무 자체는 특별히 귀한 종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자생해 온 것이어서 그 의미가 크다”며 “수려한 경관은 물론, 도심속 허파구실을 한다는 점에서도 마땅히 보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주 도심에서 자생하고 있는 이팝나무에 10년넘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 온 정승수씨(53·전주시 진북동)도 자생 군락지로서의 보존가치를 주장했다.

전국 이팝나무 소재지를 샅샅이 훑었다는 정씨는 “이팝나무 자생군락지는 전주와 포항시 흥애읍·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 인근등 3∼4곳뿐이다”면서 “이중 전주의 이팝나무는 그 개체수도 많고 내륙지방 최북단 자생군락지로 추정돼 천연기념물로 지정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전북지역의 경우 순창 팔덕과 구림∼완주 구이∼전주 동완산동·다가공원쪽으로 이팝나무 군락지가 이어진다”고 밝힌 그는 “고창 선운산과 정읍 내장사등에도 이팝나무가 자라지만 개체수가 10주이상 되는 곳은 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교직에 몸담았던 정씨가 이팝나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89년 전주천변 다가공원과 동완산동 초록바위에서 자생군락지를 발견하면서부터다.
이후 3년넘게 경상도와 전라도·충남등 내륙은 물론 도서지방까지 전국 곳곳을 돌며 채종(採種), 이팝나무 대량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팝나무는

5월에 절정을 이룬 이팝나무 꽃을 보고 있으면 마치 겨울철 눈꽃을 봄에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수북하게 가지를 덮은 하얀 꽃잎이 흰 쌀밥(이밥)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팝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 꽃피는 시기가 대체로 입하(立夏)무렵이어서 입하나무로 부르다 이팝나무로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키가 자라면 약 20m에 이르는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의 암수 딴그루로 우리나라 남부지방과 일본·중국등에 자생하는 세계적인 휘귀식물이다. 근대적 수리시설을 갖추지 못한 예전의 농부들은 이팝나무 꽃의 만개여부에 따라 한해 벼농사의 풍흉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비가 많이 내려 이팝나무 꽃잎이 만개하면 그 해 농사도 풍년이 든다는 것.

일부 지방에서는 치성을 드리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고 믿어 신목으로 받들기도 했다. 최근 관상용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예전에는 땔감으로도 많이 쓰였다. 전국적으로 김해와 전남 승주·경남 양산등 8곳의 이팝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또 포항시 흥애읍 옥성리에서는 해마다 5월이면 이팝꽃 축제를 열기도 한다.

도내에는 진안군 마령면 마령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이팝나무가 지난 68년 천연기념물 제2백14호로,고창군 대산면 중산리 이팝나무가 67년 천연기념물 제1백83호로 각각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지정사유는 둘다 노거수. 최근에는 마령초등학교내 이팝나무가 고사위기에 처한 것으로 밝혀져 관리를 맡고 있는 진안군에서 응급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전북일보 전자신문

[날씨 이야기] 풍년을 점치는 이팝나무

[중앙일보 하현옥 기자] 풍년을 점치는 이팝나무. 못자리가 한창인 늦은 봄, 이팝나무에 흰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꽃이 많이 피지 않으면 흉년이 드는 것으로 믿어왔다고. 이팝나무란 이름은 나무에 달린 소복한 꽃송이가 마치 밥사발에 소복이 담긴 흰 쌀밥처럼 보여 '이밥나무'라고 부르다 변한 것. 이팝나무의 꽃을 보고 올 농사를 점쳐보시길.

하현옥 기자

 

전경옥입니다-이팝나무

이맘때면 대구의 앞산 순환도로는 눈을 인듯 새하얀 꽃들로 뒤덮인다. 이팝나무들이다. 나무 전체가 하얀꽃을 덮어쓴 것이 이밥(쌀밥)같다하여 이팝나무라 한다고도 하고, 입하(立夏)에 꽃이 핀다하여 입하목(立夏木)으로 부르다 이팝나무로 불리게 됐다고도 한다.

여하튼 꽃모양을 보면 꼭 하얀 쌀밥덩이가 소복소복 얹혀있는 것 같다. 묵은 곡식은 바닥나고, 햇보리는 아직 한참 먼 이맘때 춘궁기(春窮期)면 보이는 것마다 먹을 것으로 보였었나보다. 하기야 옛말에도 "무슨 설움 무슨 설움해도 배고픈 설움이 제일 크다"고 했다. 산의 소나무 속껍질(송기)까지 벗겨먹어야 했으니 서민들에겐 보리 한 줌 넣고 끓인 멀건 나물죽이 오히려 호사스럽던 시절이었다. 배에선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나고 머리는 팽글거려 허깨비라도 보일 판인데 애꿎게 아지랑이마저 눈앞을 어지럽히니 몽롱한 눈에 흐드러진 이팝꽃이 수북히 담긴 쌀밥처럼 먹음직스레 보였을 법도 하다.

이팝나무에 얽힌 슬픈 얘기들도 있다. 강화도 마이산근처 아령읍엔 아름드리 이팝나무들이 있다는데 예전 '아기사리'(아기무덤) 터라고 한다. 제대로 먹이지 못한 탓에 영양실조에 시달리다 뭔병인지도 모르고 죽은 어린아이들을 묻었던 곳. 아마도 그곳 늙은 이팝나무들은 저세상에서나마 흰 쌀밥 배불리 먹으라고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며 심었던 나무일 것이다.

그런데 '밥'으로 인한 설움이 21세기에 들어선 요즘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얼마전 밥 한솥 지어놓고 짧은 생을 마감했던 15세 여중생 수경양의 애달픈 삶이 앞산 순환도로 길게 줄지은 이팝나무의 하얀 꽃무리에 오버랩된다. 객사한 아버지와 뇌종양 앓는 어머니, 칭얼대는 철부지 두 동생. 온 몸으로 가난과 맞섰던 소녀는 그예 "내게 미래가 있을까"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채 나래를 접고 말았다. 그 아이가 이생에서 마지막 남긴 것은 눈물로 지은 밥 한솥.

식생활 패턴의 서구화와 몸짱바람으로 밥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다이어트 전문가들이 "밥은 거르지 마시고…"라고 조언해도 밥보기를 원수보듯 한다. 한쪽에선 여전히 '밥' 때문에 삶을 접는 사람들이 있고.

5월 중순까지 이팝나무는 하얀 쌀밥 같은 꽃을 피워낼 것이다. 그 나무들 옆을 지나칠 때마다 가슴언저리가 콕콕 찔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나마 이 사회에 희망이 있다할까.

'이팝나무가 초록 잎사귀 위에/ 하얀 쌀밥을 파실파실 피워 날아갈 듯 깔아 놓았다./ 하얀 쌀밥이 바람에 날아간다…(중략) 이팝나무 위, 둥둥 떠가는 구름을 타고/ 제사밥처럼/ 소복소복 담겨 부풀어오르는 것이 어미들 가슴 속에/ 기어코 이팝나무꽃을 불질러놓았다'.

(박정남 시 '이팝나무 길을 가다'중)전경옥 편집부국장

ⓒ[매일신문 04/27 15:05]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규태코너] 이팝나무

[조선일보]며칠을 굶고 누워 있던 흥부가 박속으로라도 허기를 채우고자 박을 타는데 쌀이 쏟아져나온다. 나오는 족족 밥을 지어 남산만하게 밥산을 만들어놓고 아들들을 불러댄다.

스물일곱 아들놈들이 달려와 밥산에 철환(鐵丸)처럼 틀어박혀 밥을 먹어대는데 형태는 보이지 않고 바람에 날리는 이팝나무처럼 밥산이 요동칠 따름이었다. 흔치 않은 나무인지라 바람에 요동치는 이팝나무가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오뉴월이 되면 이팝나무에는 하얀 꽃이 만발, 마치 밥을 지어 들판에 쌓아놓은 형상이다. 밥으로 만든 산을 이팝나무에 비유한 데는 그 꽃이 쌀밥처럼 희다 해서뿐 아니다. 이팝나무라는 이름이 바로 이 쌀밥을 둔 한국인의 비원(悲願)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 비원의 이팝나무를 복원되는 청계천 양 언덕의 가로수로 1500그루 심기로 했다 한다. 이팝나무의 어원에 대해 세 가지 설이 있다. 이 나무에 하얀 꽃이 피기 시작하는 것은 입하(立夏)철이다. 입하철에 꽃이 핀다 하여 입하나무가 이팝나무가 됐다는 설이 그 하나다.

지금도 전라남도에서는 입하나무라 부르는 지방이 있다. 둘째 이팝나무에 꽃이 만발하면 쌀밥 지어 쌓아놓은 것만 같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내건 북한주민의 생활지표가 ‘이팝에 쇠괴기국’이었듯이 쌀밥을 이밥 이팝이라 했음으로 미루어 이팝나무는 쌀밥나무란 뜻이라는 설이다.

셋째로 이 이팝나무 꽃이 만발, 별나게 희면 그 해 벼농사에 풍년이 드는 조짐으로 알았고 그로써 흰쌀밥 곧 이팝을 먹게 됐다 하여 이팝나무라 불렸다는 설이 그것이다. 남도에서 풍년나무로 불리운 것도 바로 흡사하게 생긴 것들끼리는 서로 상감(相感) 상통(相通)한다는 원시적 사고가 그 같은 이름을 있게 한 것일게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이팝나무가 육도목(六道木)으로 불린다던데 사람이 죽어 저승 가는 삼도천(三途川)을 건널 때 뇌물로서 관 속에 쌀을 넣어주는 관습이 있었고 그로써 극락이나 지옥에 환생한다든가 사람 또는 짐승 수라 아귀 등 육도(六道)로 제 갈길 가게 된다 하여 이를 육도미라 일컫게 됐다 한다.

혹심한 흉년을 겪으면서 이 이팝나무 꽃을 말려두었다가 대신 넣어주었던 데서 육도목이라는 이름을 얻었음직하다. 주로 3남지방에서 20m까지 자라는 이팝나무는 300~400년 된 수령의 천연기념수만도 전국에 9그루가 있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