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아르, 그녀의 서른한살을 흔든 사랑
그녀의 서른한살을 뒤흔든 사랑!
대학생 보스트와 4년 열애


“내 사랑 보스트, 당신은 내게 달콤한 편지를 보냈어요. 나는 당신의 사랑을 강하게 느껴요. … 내일 봐요. 나는 당신을 꼭 껴안습니다.”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Beauvoir)가 31세 때 8살 연하의 애인에게 보낸 편지다. 스물세 살 앳된 청년이었던 연인의 이름은 자크-로앙 보스트. 보부아르가 30대 초반이었던 1937~40년 그에게 보낸 편지들이 ‘오고간 편지(Correspondance crois e·갈리마르 출판사)’라는 책으로 출간, 처음 공개됐다.

‘오고간 편지’ 시절 보부아르는 장 폴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 상태였고, 파리의 몰리에르 고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무렵 사르트르는 소설 ‘구토’를 펴내 문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보스트는 파리의 대학생이었고, 사르트르의 제자였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 중에도 미국 작가 넬슨 알그렌과 17년 동안 몰래 사랑을 나누었고, 사후에 ‘알그렌에게 보낸 편지’라는 책도 나왔다. 그러나 보스트와의 사랑은 비밀이 아니었다. 보부아르는 당시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엄청나게 즐거운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났다”라며 “그건 내가 보스트와 3일 전에 함께 잤다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둘 사이의 계약 결혼 원칙은 영혼의 정절, 육체의 자유, 관계의 투명성이었기 때문이다. 보부아르가 보스트와 사랑에 빠졌을 때, 사르트르 역시 다른 여자가 있었다.

 

보부아르는 1939년 8월 31일 목요일 보스트에게 쓴 편지에서 사랑의 실존적 고뇌를 표현했다.

“내 삶은 우연적이고 부조리함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한 편의 이야기처럼 일종의 무(無)에서 등장한 듯하고, 그것은 열정적 호기심과 공포로 나를 채운다. 첫 번째의 경우(호기심) 나는 더 이상 보부아르가 아니고 어쩌면 끔직할 운명을 목격하는 의식, 즉 비인격적이고 무관심한 의식이 된다. 두 번째의 경우(공포)에 나는 전력을 다해 매달리고 싶은 내 삶의 한복판에서 나를 재발견하고, 나는 계속 행복해지고 싶은데, 위협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극도록 두려워한다.” 이 편지에서 보부아르는 젊은 연인과의 사랑이 호기심에서 비롯됐고, 사랑에 빠질수록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 중인 자신을 방기하면서 이 운명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구경하고 싶어하는 심경을 털어놓은 듯하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뒤흔드는 이 사랑에 극도의 공포심도 함께 느낀 것 아닐까. 두 사람의 관계는 4년을 넘기지 못했다. 보부아르는 1986년 사망했고, 보스트는 1990년 세상을 떴다. 보스트는 보부아르와 나눈 편지를 50년 동안 간직했다가 죽기 직전 보부아르의 양녀인 실비에게 넘겼고, 실비는 각 편지에 각주를 붙여서 이번에 책으로 묶어냈다.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

  

추억의 사진 한 커트

1988년 4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Anapurna, 해발 8078 미터) 근처

토롱고개(Thorong La, 해발 5416 미터)를 오르기 전, 베이스캠프에서

(위 사진과 아래 기사는 함께 등반했던 독일인 4명에 대한 내용으로, 독일의 한 신문에

기사화되었던 것을 그 중 한명이 복사해서 내게 보내주었다.

우리 다섯은 이 사진을 찍은 날로부터 이틀 뒤, 새벽 3시에 베이스캠프를 출발,

 정오쯤 해발 5416 미터의 Thorong La 정상에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는 정상도전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샴페인대신 독일 초코렛을 나눠먹었다.

내 생애 발로 걸어올라간 가장 높은 지점인 Thorong La 등반을 위해

나는 3주를 히말라야에서 보냈고, 네팔에 머문 기간은 총 4주였다.)

전문을 확대해 보려면 위 이미지 클릭

허브 <보리지>

앵두

매실

이 칼럼은 주택, 상가, 건물 등이 그 속에 사는 사람과 조화를 이루면서 목적에 알맞게 이용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것입니다. 필자인 박시익씨는 건축사 겸 공학박사(풍수지리 전공)로서 현재 영남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설계학과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 고층일수록 ‘홀아비’공간

- 큰나무 높이가 ‘생기’한계

사람이 밤에 편안하게 잠을 자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비바람을 막아주는 아늑한 집이 필요하다. 인간의 조상들이 오래 전부터 잠자온 공간을 땅속인데, 땅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했다.

오늘날 도시의 제한된 땅과 높은 인구밀도는 고층의 아파트를 만들어냈다. 그러다보니 사람의 잠자리가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늘높이 올라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전망이 좋고 소음이 적다는 이유로 저층보다 고층의 아파트를 선호하는데, 풍수이론으로 보면 고층아파트는 결코 사람에게 편안한 잠자리 공간이 아니다.

사람은 양에 해당하는 하늘의 기운과 음에 해당하는 땅의 기운을 동시에 받고 살아간다. 그런데 지표면에서 떨어진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땅의 기운은 적어지는 대신 하늘의 기운이 강해진다. 이에 따라 양의 기운만 받는 고층아파트는 어머니의 기운이 부족한 홀아비의 공간이며 사람의 잠자리로는 명당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지표면에서 가장 높이 살아 있는 생명체는 나무이며, 나무보다 높은 곳은 생명체의 거주지로 적당하지 않다. 나무의 높이는 수종이나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5m정도로 본다. 이를 아파트에 적용하면 아파트 한층의 높이는 2.6~2.7m이므로 5층 정도를 나무 높이로 볼 수 있다. 즉 아파트는 5층까지가 땅의 기운을 받는 생기있는 공간이며, 그 이상은 생기가 없는 공간이 된다. 이때문에 고층아파트에서는 화단을 가꾸어도 나무와 화초가 잘 자라지 않는다.

또 고층일수록 바람이 많이 불고 공기압이 낮아져 저기압을 이루게 되는데, 이런 환경에 장기간 생활하면 인체의 신진대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아파트의 명당은 5층 이하, 역설적으로 요즘 사람들이 꺼려하는 1층이 명당에 위치한다.

KBS-1Radio 생방송 100분 토론: "한국 축구, 위기인가?"

여름은 여름인가봐요^^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